요즘 라이프
체리슈머가 온다
마트 곳곳을 둘러보지만 야채 하나도 선뜻 집어들기 힘들다.
물가는 오르고, 지갑은 가벼워졌다. 현대판 보릿고개라 불리는 고물가시대, 불황을 관리하는 소비자 ‘체리슈머’가 뜨고 있다.
체리피커 vs. 체리슈머
케이크 위에 올라간 체리만 쏙 집어먹는다는 뜻의 체리피커(cherry picker)는 그동안 부정적인 의미로 사용되어 왔다. 신용카드의 혜택만 누리고 정작 카드는 사용하지 않거나, 물건이나 서비스를 구매하지 않고 자신의 실속만 차리는 얄미운 소비자로 여겨졌다. 일부 기업들은 체리피커를 블랙리스트에 올리거나, 마케팅 대상에서 적극적으로 제외시키기도 했다. 소위 진상고객으로 낙인찍힌 것이다. 하지만 고물가시대를 마주하며 체리피커의 소비행태를 영리하게 진화시킨 소비자들이 등장했다. 바로 체리슈머(cherrysumer)다. 체리슈머는 쉽게 말해 알뜰한 소비자를 일컫는다. 자신에게 주어진 한정된 자원을 가장 효율적으로 쓸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하고, 소비에 반영한다. 같은 제품 중에서 가장 저렴한 값을 찾아 구입하고, 중고마켓을 적극적으로 활용하기도 한다. 분명 이들이라면 케이크 위 체리만 집어먹기보다는 케이크를 조각내서 구매할 수 있는 방법에 대해 고민할 것이다.
우리가 불황에 대처하는 자세
체리슈머 A씨는 인터넷 쇼핑을 하기 전에 같은 제품을 구매할 의사가 있는 친구들을 모았다. 배보다 배꼽이 더 크다고, 물건 값은 오프라인보다 저렴했지만 배송비가 아까웠기 때문이다. 결국 몇몇 친구들과 함께 최소 구매금액을 채웠다. 배송비는 무료가 됐다. 비단 A씨의 모습만이 아니다. 배송비나 배달비를 조금이라도 절약하기 위해서 고민하는 소비자들이 크게 늘었다. 최근에는 각종 배달 애플리케이션에서 배달비를 나눠 부담할 수 있는 ‘함께 주문’ 서비스를 도입하기도 했다. 음식을 주문하면 여러 사람들과 링크를 공유하고, 하나의 주소지에서 음식을 수령한다. 체리슈머의 소비습관을 마케팅에 적극적으로 반영한 사례다. 합리적인 소비라고는 하지만 어쩐지 씁쓸한 기분도 든다. 체리슈머라는 용어가 등장한 데에는 경기 불황이라는 시대적 비극이 전제되어 있기 때문이다. 현대판 보릿고개를 넘어가는 사람들, 체리슈머는 불황의 시대에서 가장 현명한 생존방식을 찾아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