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 STORY

문화 칼럼

언어를 디자인하는 사람이
미래를 디자인하는 사람이다

일상생활은 물론 팀 회의, 거래처와의 협상과 같이 조직생활에도 토론이 필요한 상황은 비일비재하다. 겸손하게 임하되 만만해 보이지 않게 토론을 이끌어나가는 것, 슬기로운 조직생활을 위한 방법이 될 수 있다.

글 | 유영만 지식생태학자, 한양대학교 교수

언어적 틈새에서 절치부심하는 과정

이처럼 똑같은 말인데 전달하려는 의미와 의도를 언어를 재배치하고 문장을 건축하니까 똑같은 제도적 변화에 대한 직원들의 만족감은 감동을 넘어 감탄사를 자아내게 만들었다. 누군가는 “나이를 먹으니까 잘 되던 것도 안 되네”라고 말하면서 나이 듦을 한탄하지만 누군가는 “나이가 들어간다는 건 내가 좋아하는 걸 하나씩 포기하는 것 같아”(유재석)라고 말한다. 똑같이 나이가 들어가지만 누군가는 나이 들어가는 과정을 낡은 생각을 날조하면서 한탄과 후회의 과정으로 해석하고, 누군가는 익은 생각을 창조하면서 감탄과 이전과 전혀 다르게 살아가는 인생 후반전이라고 생각한다. 똑같은 나이 들어가는 현상을 어떤 언어로 디자인하는지에 따라 전혀 다르게 와 닿는다. 나이가 들어가면서 몸이 늙어가는 것은 어쩔 수 없지만 생각이 낡아빠지는 것은 얼마든지 사전에 방지할 수 있다. 바로 사용하는 언어 사용 방식을 바꾸면 이전과 다르게 세상을 바라볼 수 있고, 그만큼 이전과 다른 삶을 살 수 있는 가능성의 문이 열린다.

언어 디자인이란 말하고 싶은 의지나 의도를 적확한 언어를 벼리고 벼린 다음 적재적소에 배치해 심금을 울리는 문장을 건축함으로써 단순하지만 심오한 의미, 같은 말이지만 전혀 다른 가치를 창조하는 과정이다.

그렇다면 언어를 디자인한다는 의미는 구체적으로 어떤 노력을 통해서 구현되는 것일까. 둘째, 언어 디자인은 소설가 배수아가 《당나귀들》이라는 책에서 말한 ‘언어의 틈새’를 메꿔 나가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과정이다. 언어의 틈새는 매일 만나는 평범한 일상이지만 ‘배운 언어’로 포착되지 않을 때, 아직 배우지 못한 언어를 동원해 느낌과 생각을 표현하려는 분투 사이에 존재한다. 사물이나 현상이 말하고 싶은 의도를 배운 언어로 담아내지 못할 때 언어의 틈새는 벌어지기 시작한다. 작가는 이 틈새를 메꾸기 위해 어제와 다른 언어를 동원해서 사물이나 현상이 말하고 싶은, 그래서 그걸 받아쓰면서 노력하는 과정에서 언어는 틈새를 메꾸는 새로운 매개체로 부각된다. 언어 디자인은 바로 언어의 틈새를 메꾸기 위한 분투노력이자 애쓰기다. 배수아 작가의 표현을 빌리면 언어 디자인은 언어를 통해 표현하고 싶은 욕망과 사물이 말하고 싶은 의도 사이의 간극을 줄이려는 영원한 투쟁, 즉 ‘언어와 사물이 그대로 등가가 되는 세상’을 향해 끝이 없는 싸움을 벌이는 과정이다.
“버려진 섬마다 꽃이 피었다.” 소설가 김훈의 《칼의 노래》 첫 문장이다. 작가는 처음엔 “꽃이 피었다”가 아니라 “꽃은 피었다”로 적었다고 한다. ‘은’이 ‘이’가 되기까지 담배 한 갑을 태웠다는 고백을 산문집 《바다의 기별》에서 밝힌 적이 있다. “‘꽃이 피었다’는 사실의 세계를 진술한 언어이고 ‘꽃은 피었다’는 의견과 정서의 세계를 진술한 언어입니다. 나는 사실만을 가지런히 챙기는 문장이 마음에 듭니다”라는 김훈 작가의 고백을 들어보면 언어의 틈새 사이에서 작가가 얼마나 절치부심했는지를 보여주는 고뇌의 흔적을 발견할 수 있다. ‘은(는)’과 ‘이(가)’의 사소한 차이로 사실과 정서의 세계를 다르게 담아내려는 노력이 언어 디자인이다. 이런 노력에 풍부한 어휘력과 화려한 수사적 기교가 필요하지 않다. 단순한 차이지만 심오한 의미상의 차이를 가져오는 효과는 보다 적확한 언어를 통해 의미를 전달하려는 작가적 정신과 자세를 통해 얻을 수 있다.

살갗을 파고드는 문장건축 과정

셋째, 언어 디자인은 생각지도 못한 깨달음을 던져주기 위해 전혀 다른 방식으로 표현할 때, 전두엽을 자극할 정도로 폐부를 찌르고 살갗을 파고드는 문장 건축과정이다. “무지라고 하는 것은 단순히 지식의 결여를 가리키는 말이 아닙니다. ‘알고 싶지 않다’라는 마음가짐을 갖고 한결같이 노력해온 결과가 바로 무지입니다. 무지는 ‘나태의 결과’가 아니라 ‘근면의 성과’입니다”(7쪽). 우치다 타쯔루의 《푸코, 바르트, 레비스트로스, 라캉 쉽게 읽기》에 나오는 말이다. 무지를 나태의 산물로 생각했던 범상한 사람들의 생각에 일격을 가하는 주장이 아닐 수 없다. 무지라는 개념을 놓고 어떤 방식으로 표현할지를 고심에 고심을 거듭하다 근면이라는 개념과 마주치면서 색다른 깨우침의 장을 여는 색다른 언어 디자인의 성취가 아닐 수 없다.

이런 언어 디자인은 언어적 기교나 테크닉, 말의 솜씨나 능숙한 기술로 구현되지 않는다. 오히려 글을 쓰려는 작가의 체험적 깨달음과 각성을 통해 자신의 사고방식을 이전과 다른 언어로 표현하려는 노력에서 얻어지는 지혜의 산물이다.

“오래 산 사람을 늙는다고 하고(늙었다고), 오래 쓴 물건을 낡다고 한다(낡았다고). 사람과 물건이 다르다는 뜻이다”(29쪽). 이어령의 《눈물 한 방울》에 나오는 말이다. ‘사람’과 ‘물건’, ‘늙는다’와 ‘낡다’의 차이점을 설명하는 방식은 참으로 다양할 수밖에 없다. 어떤 방식으로 표현하는지는 표현하는 사람의 언어 선택과 배치, 단어가 품고 있는 의미 비교와 분석을 통해 단순하지만 심오한 의미 차이를 가져오는 언어 디자인에 달려 있다. “인간은 울림이다. 우리는 주변에 존재하는 수많은 떨림에 울림으로 반응한다. 세상을 떠난 친구의 사진은 마음을 울리고, 영화 <레미제라블>의 ‘민중의 노래’는 심장을 울리고, 멋진 상대는 머릿속의 사이렌을 울린다. 우리는 다른 이의 떨림에 울림으로 답하는 이가 되고자 한다. 나의 울림이 또 다른 떨림이 되어 새로운 울림으로 보답받기를 바란다. 이렇게 인간은 울림이고 떨림이다”(6쪽). 김상욱의 《떨림과 울림》에 나오는 말이다. 자연과학적 전공언어인 ‘진동’을 인문학적 언어인 ‘떨림’으로 바꾸니 수리체계로 직조된 물리학이 갑자기 일상을 다시 바라보게 만드는 다정한 문장으로 다가오는 경이로움이 탄생한다.
김상욱 교수의 주장은 존재의 떨림은 서로의 울림이 된다. 떨림에 공명을 맞추지 못하면 울림은 없다는 문장에 농축되어 있다. 모든 존재는 저마다의 위치에서 살아가기 위해 떨고 있다. 그 떨림에 반응하는 움직임이 울림이다.

떨림과 울림의 어울림이 곧 물리현상뿐만 아니라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이다. 여기서 언어를 디자인하는 네 번째 노력을 보자. 자신은 떨림을 통해 메시지를 보냈지만 여기에 감응하는 사람이 울림으로 보답하지 않다가 떨림의 방식으로 바꾸니까 전혀 다른 공명의 장이 형성되는 사례다. 미국의 마케팅 에이전시인 퍼플 피더(Purple Feather)가 만든 ‘단어의 위력(The Power of Words)’이라는 영상을 보면 언어를 디자인한다는 게 무슨 의미이고 얼마나 위력적인 변화를 가져오는지를 보여주는 전형적인 본보기다. “저는 장님입니다. 제발 도와주세요(I’m blind. Please help!).” 이런 글을 써놓고 지나가는 사람들의 주의를 끌어보려고 하지만 소수의 사람만이 동전을 놓고 간다. 때마침 지나가던 한 숙녀가 장님의 문장을 호소력 있는 글로 재건축한다. “참 아름다운 봄날입니다. 하지만 전 볼 수가 없네요(It’s a beautiful day and I can’t see it).” 갑자기 지나가는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면서 많은 사람들이 동전을 기꺼이 놓고 지나간다. 순식간에 동전통에는 많은 돈이 모이기 시작했다. 같은 생각이지만 다른 방식으로 언어를 디자인하면 관심도 없었던 사람에게 주목을 끌면서 세상을 바라보는 새로운 안목을 심어준다. 이것이 바로 언어를 디자인해야 되는 가장 절실한 이유이자 목적이다.

의미를 심장에 꽂아 의미심장하게 만드는 과정

《당신이 사용하는 언어를 바꾸면 당신이 바라보는 세상이 바뀐다(Change your words. Change your world)》는 책을 쓰는 미국의 작가, 앙드레 가드너(Andrea Gardner) 역시 이 영상을 활용해서 언어 디자인의 강력한 효과와 가치에 대해서 언급한다. 우리가 사용하는 언어를 바꾸면, 그 언어를 매개로 바라보는 세상이 이전과 다르게 보인다. 세상을 다르게 보려면 결국 내가 사용하는 언어를 이전과 다른 방식으로 디자인해야 된다는 점이다.

언어를 디자인하면 없었던 생각도 새롭게 꿈틀거리고, 보이지 않았던 현상도 색다른 상상력을 품고 낯선 세계로 인도하는 신호등이 켜진다. 언어를 디자인하면 하고 싶지 않았던 행동도 갑자기 추진력을 받으면서 과감하게 실천하게 만드는 촉발력이 생긴다.

방관하던 사람도 주먹을 쥐고 심장이 뛰는 삶을 살게 만드는 원동력이 바로 언어 디자인의 위력이다. 똑같은 말도 맥락에 따라 임기응변력을 발휘해서 적재적소에 적확하게 사용하면 언어는 문맥을 타고 흐르는 깨달음의 보고이자 생각의 그릇이다. 필름이 모든 이미지를 담아내는 그릇이듯, 언어는 모든 생각을 저마다의 고유함을 가장 아름답게 담아내는 그릇이다.
언어를 디자인하면 평범한 99%의 사람들이 사용하는 언어 사용 방식에서 과감하게 벗어나 비범한 1%의 사람들이 사용하는 예술적 언어의 세계로 입문할 수 있다. 심오하지만 단순한, 단순하지만 깊이 있는 인생의 지혜, 적확한 개념으로 이루어진 문장 건축 디자인에 달려 있다. ‘언어를 디자인’하는 사람이 ‘미래를 디자인’하는 사람이다.

당신이 사용하는 언어를 Design하지 않으면 언어로부터 Resign 당한다. 중년 이후 언어를 벼리지 않으면 언어가 나를 버린다. 주어진 맥락에서 내가 전달하고자 하는 의미를 가장 적확하게 표현하는 언어를 끊임없이 벼리고 벼려야 날선 언어로 다듬어지면서 낯선 생각이 잉태된다.

언어가 앙상하게 야위면 생각도 가난해지고 행동도 천박해진다. 타성에 젖은 언어로 지은 낡은 존재의 집을 허물고 탄성을 자아내는 새로운 언어로 문장을 건축할 때 낯선 생각도 새롭게 잉태되기 시작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