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 STORY

문화 칼럼

아프리카 최빈국의 희망이 된 진흙건축

글 | 한은화 중앙일보 기자 사진 | 하얏트 재단

지난 3월 미국 하얏트 재단이 발표한 올해 프리츠커상 수상자는 프란시스 케레(56)였다. 1979년 제정된, 건축계의 노벨상이라고도 불리는 이 상의 역사상 최초의 흑인 수상자다. 케레는 아프리카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로 꼽히는 부르키나파소 출신 원주민이다. 프리츠커상의 수상자가 오랫동안 서구의 백인이었던 것을 생각하면 케레의 수상은 프리츠커상의 달라진 지향점을 제대로 각인시킨 사건이었다. 최근 들어 프리츠커상은 ‘지역주의’에 꽂혔다. 지역의 가치를 담는 건축, 지역에서 행동하는 건축에 힘을 싣기 시작했다. 건축이 인류의 삶과 사회를 바꿀 수 있고, 그런 가능성을 보여준 지역의 건축을 세계무대로 끌어내고 있다. 스타 건축가가 아니라 지역에서 묵묵히 작업을 하고 있는 건축가들이 프리츠커상을 통해 알려지기 시작했다. 2017년 프리츠커상 수상자로 카탈루냐 지방에 있는 건축사 사무소 RCR의 세 공동대표가 지목됐을 때만 해도 언론은 이 ‘듣보잡’ 건축가들이 세계 건축계의 최정상 자리를 차지한 데에 놀라워했다. 영국 가디언과 미국 파이낸셜 타임스는 ‘잘 알려지지 않은(little known)…’ ‘스타 건축가가 아닌(opposite of the stararchitec)…’으로 시작하는 기사 제목을 뽑기도 했다.
그런데 프리츠커상의 바람대로 정말 건축이 사회를 바꿀 수 있을까. 건축에 그런 힘이 있을까. 프리츠커상의 심사위원단은 케레의 작업을 통해 가능성을 봤고, 건축의 힘을 증명하고자 했다. ‘매우 척박한 땅에서 지구와 지역 주민을 위해 지속가능한 건축을 개척한 선구자’라고 케레를 평가하면서다. 하얏트 재단의 톰 프리츠커 회장은 “케레는 엄청나게 극빈한 아프리카 땅에서 지역과 지역민을 위한 지속가능한 건축을 개척하고 있다”고 말했다.

진흙으로 선보인 혁신적인 건축

케레가 선보인 지속가능한 건축의 비법은 지극히 평범하면서도 특별하다. 케레가 선택한 건축 재료는 진흙이었다. 아프리카에서 흔하디흔한 재료였다. 진흙은 케레가 나고 자란 동네에서 가장 흔한 재료이자, 가난한 집의 상징이었다. 그가 진흙으로 학교를 짓겠다고 하자, 마을 사람들은 실망했다. “겨우 진흙으로 학교를 짓겠다고 밭에서 일하는 대신 그렇게 오랫동안 유럽에서 공부한 거냐!” “진흙은 장마철에 온전할 수 없는데.”라는 원성이 터져 나왔다. 그도 그럴 것이 케레는 마을의 유일한 희망이었 다. 가난한 동네에서 독일로 유학까지 다녀온 유학파이기도 했다. 마을 사람들은 진흙에서 어떤 혁신도 발견하지 못했지만, 케레의 생각은 달랐다.

케레는 이 흔한 소재를 활용해 발전시키는 것이 혁신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야 척박한 땅에서 일회성이 아닌 지속가능한 건축을 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케레는 진흙을 다지고 다져 단단한 바닥을 만들어냈고, 진흙에 시멘트 등을 섞은 강화벽돌로 벽을 만들었다. 이 작업을 마을사람들과 소통하며 함께했다. 남녀노소가 모두 참여해 학교를 지었다. 조금씩 특별한 처방을 섞기도 했다. 학교 지붕의 경우 지푸라기로 지붕을 만들었던 마을의 집과 달리 강판을 썼다. 얇은 강판 지붕을 값싼 금속 막대로 들어올렸다. 이 작은 조치 덕에 벽과 지붕 사이 띄워진 공간으로 환기가 됐다. 45도를 오르내리는 더운 날씨에 전기도 잘 안 들어오는 마을에서 자연 환기는 무엇보다 중요했다.
케레는 “간단한 환기를 통해 가르치고 배우는 데 충분한 교실을 만들고 싶었다”고 말했다. 최대한 적게 투입하고 조금 다른 장치로 큰 효과를 보게 하는 것, 이것이야말로 척박한 땅에서 케레가 일궈낸 혁신이었다. 그는 첫 프로젝트인 간도 초등학교로 이슬람 ‘아가 칸 건축상’(2004년)을 받았고, 국제적으로 이름을 알렸다.
케레가 진흙 학교에 골몰했던 것은 그의 성장배경에 이유가 있었다. 그는 부르키나파소의 간도라고 하는 작은 마을에서 태어났다. 그가 태어난 동네는 전기도, 깨끗한 식수도, 학교도 없는 곳이었다.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교육열이 남달랐던 아버지는 아들이 7살이 되자 도시의 학교로 보냈다. 학교 환경은 열악했다. 한 반 학생 수가 150명인데 40도가 훌쩍 넘는 더위에 학교에서 급우가 죽는 일도 있었다.

케레가 2013년 테드(TED) 강연에서 밝힌 일화다. 휴일을 맞아 집에 들른 케레가 다시 학교에 갈 때면 그는 마을 풍습에 따라 집집이 돌아다니며 작별인사를 했다고 한다. 그때 간도의 모든 여인이 옷깃을 열어 소중하게 간직하고 있던 마지막 동전 한 닢을 케레에게 건넸다. 이 모습에 감명 받은 7살 케레가 엄마에게 물었다. “왜 모든 여인이 저를 사랑하는 거죠?” 그러자 엄마는 말했다. “그들이 너의 교육에 도움을 주는 것은 네가 성공해서 돌아와 공동체의 삶의 질을 높여주기 바라서란다.” 케레에게 ‘공동체’가 각인된 사건이었다.

건축을 통해 미래를 만들어간 마을

진흙으로 학교를 짓는 간도 초등학교 프로젝트는 대성공을 거뒀다. 건물도 잘 지어졌고, 마을 사람들에게는 자부심이 생겼다. 그 덕에 프로젝트가 이어질 수 있었다. 학교 옆에 선생님을 위한 주택과 도서관도 지어졌다. 케레는 진흙처럼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소재로써 나무도 즐겨 썼다. 2016년 부르키나파 소에 지어진 쇼게 중고등학교의 경우 건물에 나무 외벽을 한겹 더 둘렀다. 마치 천 같은 나무 벽이 건물 밖을 한 번 더 감싼 덕에 건물 안에 그늘이 생겼다. 그 덕에 전기 냉방장치를 쓰지 않아도 실내 온도를 낮출 수 있었다.
케레의 기술을 배운 사람들이 이제 다른 지역의 건설현장을 진두지휘하며 돈을 번다. 그가 마을 사람들을 훈련시켰던 이유이기도 했다. 그는 “간도의 젊은 남자가 돈을 벌려면 대부분 시골을 떠나 도시로 가다 보니 결국 공동체가 약해진다”며 “이제는 그들이 시골에 남아 다른 건축현장에서 일하고 식구들을 먹여 살리고 변화를 만들기 시작했다”고 전했다. 마을이 건축을 통해 영감을 얻고 스스로 미래를 만들어나가기 시작했다. 그가 밝힌 수상 소감은 이렇다. “부자라고 해서 물질을 낭비해선 안되고, 가난하다고 해서 더 좋은 품질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지 않아서도 안 된다. 누구든 좋은 품질과 고급스러움과 편안함을 누릴 자격이 있다.”

스타 건축가 시대의 종말

세계 건축계가 지역사회로 눈길을 돌린 것은 저성장 시대와도 연결돼 있다. 신흥 도시들이 앞 다퉈 초고층 건축물, 더 화려한 ‘트로피 건축’을 짓는 데 골몰하던 경제 부흥기와 지금의 경제 여건이 달라졌다. 대형 프로젝트의 수도 점점 줄어들고 있고, 동시에 스타 건축가가 각광받던 시대도 저물고 있다.

세계적인 건축가 렘 콜하스가 운영하고 있는 싱크탱크 연구소 OMA의 수장 레이니어 드 그라프는 “경제성장과 함께 발전하며 성공하던 시대는 끝났다”며 “이제는 실생활과 접한, 주변에서 볼 수 있는 작은 것들에 눈을 돌리고 질을 향상시 킬지 고민하는 시대가 왔다”고 말하기도 했다.

이에 발맞춰 프리츠커상의 경향도 달라졌다. 2010년 들어 부쩍 지역에서, 사회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행동하는 건축가가 상을 받기 시작했다.
2016년 프리츠커상을 받은 칠레 건축가 알레한드로 아라베나는 저소득층을 위한 ‘반쪽짜리 좋은 집’(half of a good house) 프로젝트로 유명하다. 정부 지원금을 받아 집의 절반만 지어주고 집주인이 열심히 일해 나머지를 짓게 동기부여 하는 프로젝트였다. 정부 입장에서는 부족한 정부지원금 문제를 해결할 수있었고, 거주민에게는 일할 동기부여와 집을 마저 완성했다는 성취감을 안겼다. 지난해 수상자인 프랑스 듀오 건축가 안 라카 통과 장 필립 바살은 낡은 공공건축물이나 주거 공간을 주로 리모델링하는 프로젝트를 많이 했다. 밀도 높은 도시에서 공동주택의 테라스를 넓혀 개방감을 주는 식으로 살기 좋은 건축물을 만들려고 노력했다.
매년 프리츠커상 수상자가 발표될 때마다 한국 건축계에는 질문이 쏟아진다. 왜 한국 수상자는 없는가. 8명의 수상자를 배출한 일본과 비교해 비난하는 투로 묻는 사람들도 많다. 하지만 프리 츠커상의 경향이 달라졌듯, 한국 건축계에 던지는 질문이 달라져야 한다. 왜 한국에는 한국인의 삶에 동기부여를 하거나, 산적한 도시문제를 해결하고자 시도하는 건축물이 없는가. 우리 공동체의 문제를 풀고 기여하는 건축물은 대체 왜 없는가.
박정현 건축평론가(마티 편집장)는 “좋은 건물은 많지만, 특히 공공건축물 중에서 한국의 지역을 대표하고, 그 도시의 공동정 신을 담았다고 꼽을 수 있는 건축물이 많지 않은 것이 현실”이라고 말했다.
좋은 건축물이 지어질 수 있게 행정 시스템부터 바뀌어야 한다는 지적이 많다. 지역성이 곧 보편적인 것이 되는 시대에 우리 안의 문제를 풀어가려고 보다 집중한다면, 결국 한국의 사회 문제를 해결하는 건축의 힘을 세계도 주목하는 날이 오지 않을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