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칼럼
품격있는 토론을 위해 필요한 자세
일상생활은 물론 팀 회의, 거래처와의 협상과 같이 조직생활에도 토론이 필요한 상황은 비일비재하다. 겸손하게 임하되 만만해 보이지 않게 토론을 이끌어나가는 것, 슬기로운 조직생활을 위한 방법이 될 수 있다.
토론, 설득의 과정
"우리 회사도 토론 문화를 도입해야 합니다."
“우리 회사는 회의 때 도무지 토론을 안 해”
대한민국 직장인이라면 한번쯤 해봤을 생각이다. 잘하느냐 못하느냐를 떠나 토론이 우리 사회에 필요하다는 사실만큼은 모두 알고 있다. 이러한 인식과 달리 현실에서는 활발하게 토론을 하는 모습을 찾아보기 힘들다. 아무리 토론이 중요하다고 한들 조직이나 윗선에서 어느정도 결론을 낸 사안에 대해 이야기해봤자 대내외 상황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 또는 구성원과 공감하지 못하는 싸움꾼으로 비춰질 것 같아 선뜻 나서지 못한다. 도대체 토론이 무엇이기에 토론하는 것이 이렇게 힘이 들까?
토론은 효율적인 의사 결정을 위해 정해진 형식 안에서 서로 의견을 공유하고 상대방과 청중을 설득하는 과정이다. 대선후보 토론, 100분 토론과 같은 TV토론을 떠올려보면 좋을 것이다. 인류가 토론을 시작한 기원은 고대 그리스의 도시국가(폴리스)에서 찾을 수 있다. 아테네를 필두로 한 도시국가들이 직접민주주의 제도를 채택했다. 지금으로 치면 스피치와 토론 분야의 일타강사격인 ‘소피스트’가 등장했을 정도로 고대 그리스인에게 토론은 권리를 주장하고 더 나아가 출세를 하는 데 필수적인 스킬이었다.
근대로 들어서면서 영국에서 의회 민주주의가 자리를 잡고, 의회정치가 여러 나라로 전파되며 이를 가능케 하는 토론이 더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됐다. 우리나라에서는 1995년 서울시장 후보 TV토론을 시작으로 공적 토론이 도입됐다. 이후 시대의 변화가 투명하고 수평적 조직문화 이행을 앞당기면서 이제는 토론해야 하는 세상이 왔다. 누구나 설득하고 설득당할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는 의미이다.
설득을 잘하는 세 가지 전략
토론에 있어서 말을 잘하는 것은 여러 역량 중 하나일 뿐, 절대적 요소는 아니다. 실제 국제적으로 유명한 토론자 중에서도 언변이 화려하지 않은 사람의 비중이 크다. 그들이 두각을 나타낼 수 있었던 이유는 말하는 기술 외에 토론 주제를 분석하는 사고력 등 여러 역량을 갖췄기 때문이다. 잘 설득하기 위해서는 사람이 설득되는 이유를 알아야 한다. 그리스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는 논리, 감정, 신뢰 등 세 가지 요소가 설득에 작용한다고 보았다.
논리 활용 전략
인간이 이성적인 존재라는 가정하에 논리적이고 실증적인 근거나 합리적인 이치가 있어야 설득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주장을 펼칠 때 단순히 의견만 제시하는 것이 아니라 의견을 뒷밤침하는 이유, 근거, 데이터 등 부연 설명이 있어야 한다. 아울러 논리성을 높이기 위해서는 논리적 흐름이 일관적인지 확인해야 한다. 로버트 치알디니 등 여러 사회심리학자의 연구 결과에 따르면, 인간은 일관성이 없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고 판단하고 모순에 거부감을 느끼도록 설계된다. 앞에서 말한 것과 지금 말하고 있는 것이 상충하지 않은지 확인하고 말해야 한다.
감정 활용 전략
보통 토론을 ‘서로의 논리를 겨루는 지적 활동’으로 이해하는데, 반은 맞고 반은 틀렸다. 논리만으로 설득하는 데는 한계가 있기 때문에 감정적으로도 설득할 수 있어야 한다. 상대방이 내 발언에 공감하도록 특정 경험을 떠올리게 하고 그에 따른 감정을 끌어내는 전략이다. 윤리적 의무를 강조하거나, 두려움을 불러일으키는 방법 등을 사용할 수 있다. 조직 생활에 적용하면 의사결정권자가 두려워하는 것, 직속 상사가 윗선에 보고하길 원하는 내용 등을 파악해 내 논리에 살을 붙이는데 적절히 활용하면 된다.
신뢰 활용 전략
신뢰감을 높이기 위해서는 두 가지 측면으로 구분할 수 있다. 첫째, 말하는 사람의 측면에서는 나의 전문성이 돋보이게 말해야 한다. 전문 분야가 아니라면 토론 주제에 대해 철저히 준비된 모습을 보여줘야 나에 대한 신뢰감을 높일 수 있다. 둘째, 내용의 측면에서 내가 제시한 자료의 데이터와 출처에 신뢰가 가도록 전달해야 한다. 꼭 해내겠다는 의지를 표현하는 등 토론하는 태도에서 자신감이 느껴져야 한다. 또한 자신의 지식과 직간접적 경험 등 전문성을 넌지시 보여주는 것도 좋다.
겸손하되 만만해 보이지 않는 오피스 토론 스킬
슬기로운 조직 생활을 위해서는 이러한 설득 요소를 숙지하고 상황에 맞게 활용해야 한다. 업무와 관계가 중첩된 조직생활에서는 단순히 내가 옳다는 사실을 증명하는 것을 넘어 상대방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어야 한다. 겸손하게 이야기하되 만만해 보이지 않도록 토론을 이끌어 나가는 것이 중요하다.
먼저, 사내에서 토론할 때는 말을 잘하는 것보다 안건에 집중하는 접근 방식이 필요하다. 모든 안건에는 회의 주재자의 의도가 담겨 있기 마련이다. 안건의 의도를 제대로 분석한 사람만이 논지에 맞는 주장을 펼칠 수 있다. 서로 자신이 옳다고 논쟁하는 상황에서도 “지금 논의하는 안건의 핵심을 다시 짚어보고, 안건에 대해 집중적으로 검토하는 건 어떨까요?”라고 짚을 수 있다면, 큰 그림을 그리는 인상을 줄 수 있다.
두 번째 방법은 의견을 주장하기보다는 잘 듣고 잘 질문하는 데 집중하는 것이다. 갈등이 첨예한 사안에 대해 열띤 논쟁이 날 때면, 어떻게든 본인 의견을 논리적으로 피력하는 것에만 열을 올리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오히려 나의 제안이나 주장에 더 거부감을 보일 수 있다. 이럴 땐 직접적으로 반론하기보다는 호기심 어린 질문을 던져보자. 상대방을 이기려고 한다기보다는 의견을 받아들일 준비가 됐다는 인상을 준다.
마지막으로 반론할 때 ‘그런데’, ‘하지만’을 자제한다. 더 나은 결론을 내는데 반론은 필수적이지만 반론을 하는 방식에 주의해야 한다. 상대방의 생각을 부정하는 표현을 하면 내 반론이 아무리 옳더라도 반감을 살 수 있다. “그 제안은 고려해볼 만하네요. 하지만 현재 이런 대안이 있고 비용 대비 효과가 미미한 것 같아요.” 대신 “그 제안은 고려해볼 만하네요. 말씀 주신 제안에서 어떤 부분이 우리 부서에 필요하다고 생각하시나요?”라고 말해보자.
논리를 구조화하고 두괄식으로 말하는 연습
세 가지 방법을 통해 토론의 전체 판을 조망하고 듣는 사람의 관점에서 끌고 갈 수 있다면, 이제는 말하는 사람의 관점에서 논리적으로 말하는 구조를 알고 적용할 차례다. 주장에 힘을 실어 전달할 때 듣는 사람이 이해하기 쉽게 말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실생활에서는 논리적 신호를 주는 것으로 연습할 수 있다. 머릿속이나 공책에 논리를 구조화하고 번호를 붙이는 것이다. 예를 들어 “이 제안의 장점 세 가지를 말씀드리겠습니다.”라는 식으로 숫자를 붙이거나 주요 논거를 설명하기 전에 첫째, 둘째, 셋째 등 순서를 매겨 강조한다. 숫자를 붙일 때는 논거의 핵심 키워드와 함께 말하면 중요한 내용을 한 번 더 강조할 수 있다.
이와 함께 두괄식으로 전달하는 것도 빼놓을 수 없다. 처음부터 장황한 설명과 자료를 제시하면 뇌가 한 번에 처리하는 데 어려움을 겪는다. 설명과 자료의 핵심 논지를 한 문장으로 요약한 요점을 전달해 상대방이 한번에 파악하고 다음 내용도 예측해볼 수 있게 한다.
토론을 잘하기 위해서는 힘보다 지혜를
해와 바람이 걸어가는 남자의 외투를 벗기는 내기를 한다. 거센 바람에 외투를 여미던 남자는 따뜻한 햇빛에는 붙잡고 있는 외투를 벗는다. 이솝우화 ‘해와 바람’의 이야기다. 토론도 마찬가지다. 내 결론이 옳다고만 주장하는 식으로 설득하면 상대방은 더 저항할 뿐이다. 모두가 이런 식으로 접근하면 합의나 타협이 없는, 이기기 위한 토론으로 전락해버린다. 토론을 통해 달성하고자 하는 목표를 염두에 두고, 상대방이 내 의견에 동의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면서 의견을 관철해야 더 나은 대안을 찾을 수 있다. 이를 반복하면 자연스럽게 토론할 맛 나는 회의 문화를 만들 수 있다. 설득과 타협은 찾아보기 힘들고 주장과 결론이 난무한 상황에서 해의 지혜가 필요한 이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