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CL이 만난 사람
건설현장 안전의 새로운 패러다임 ‘공간 빅데이터 종합관리 원천 기술 개발
모든 산업 분야에서 급격한 디지털화가 이뤄지고 있다. AI와 빅데이터로 대변되는 디지털화 시대에 발맞춰 산업계는 변화와 혁신의 노력에 한창이다. 하지만 방대한 시장규모와는 달리 유독 느린 디지털화 속도를 보여주는 산업 분야가 있다. 바로 건설업이다. ‘공간 빅데이터 종합관리 원천기술’ 개발로 건설현장 안전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만들어가고 있는 허준 연세대학교 건설환경공학과 교수의 제안에 귀를 기울여본다.
교수님이 개발하신 ‘공간 빅데이터 처리·가시화 등 종합 관리 원천 기술’에 대해 소개해주십시오.
건설산업의 디지털화가 가속화될 것이라는 전망도 있는데, 해당 기술을 개발하게 된 계기는 무엇입니까?
디지털 전환과 생산성의 상관관계를 분석한 [매킨지 보고서]에 따르면 건설산업은 전 세계 GDP의 13%를 차지할 만큼 시장규모가 큰 반면, 디지털화 지수는 6% 정도에 그쳐 모든 산업 중 최하위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농업이나 어업, 임업과 같은 1차 산업 분야의 디지털화 수준이 10%인 것을 감안하면 매우 아쉬운 수치입니다. 분야를 막론하고 디지털화의 가속화가 이뤄지는 4차 산업혁명 시대의 흐름과는 명백히 반대인 셈이죠.
무엇보다 심각한 부분은 지난 20년간 건설산업의 생산성 향상률이 고작 1%대에 머물러 있다는 것입니다. 세계 경제를 기준으로는 2.8%, 제조업으로 한정해도 무려 3.6%의 성장을 달성한 것과는 사뭇 대조적입니다. 여러 가지 원인을 꼽을 수 있겠지만, 앞서 언급한 더딘 디지털 전환도 주요 이유 중 하나입니다. 디지털 전환 여부와 직결되는 품질향상 및 안전성 제고 측면에서 낙제점을 받을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저는 건설산업의 디지털 전환을 촉진하기 위해서는 건설현장에서 생산되는 데이터를 효과적으로 담아낼 수 있는 그릇(플랫폼)이 필요하다고 판단했습니다. 또한 여기서 한 발 더 나아가, 플랫폼의 효용성을 증명한다면 건설산업의 실효적인 성장을 이끌어낼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실제로 이미 건설산업을 주도하고 있는 핵심 기업들의 솔루션을 분석해봤지만, 현장에서 생산되는 데이터의 특징을 모두 반영할 수 있는 시스템은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해당 결론에 도달한 후, 본격적으로 ‘8+1’로 표현되는 건설현장 데이터의 특성을 모두 담아낼 수 있는 공간 빅데이터 종합관리 기술개발에 착수하게 된 것입니다.
공간 빅데이터 원천 기술을 현장에 적용한다면 무엇이 바뀌게 되나요?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은 건설이라는 행위가 빚어낸 수많은 작품들로 가득 차 있습니다. 인류가 일상을 영위하는 아파트와 주택을 비롯해 빌딩, 공장, 학교, 발전소와 같은 일반 건축물은 물론 도로와 교량, 지하철 등의 기반시설도 모두 건설이라는 행위의 결과물입니다. 모든 건축물은 종류에 따라 ❶인프라 시설(Civil Works) ❷건물(Building Works) ❸공장(Plant Works) ❹초미세공정 공장(Fab, Fabrication Facility)의 4종류로 나뉘며, 건설 공정에 따라서 ‘기획–설계–시공-유지·관리’의 4단계를 필요로 합니다. 이를 가리켜 흔히 ‘건설 분야의 라이프 사이클(4X4)’이라고 표현하죠. 건설 분야의 라이프 사이클에서 발생하는 데이터는 독특한 특성을 갖고 있습니다. 건설 데이터의 특성을 정리하면 방대한 데이터 양, 고도의 계산량, 3D 기반의 건설공정, 3D 그래픽 기법 요구, 위치 기반, 보안성 확보, 웹 및 어플리케이션(앱) 형태의 솔루션 제공, 낮은 동시 접속 등으로 나뉩니다. 이러한 건설 특성상 소위 ‘4x4 매트릭스’에서 이뤄지는 유사한 시공이라 하더라도 공정마다 혹은 분야마다 약간씩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90%가 동일하지만 나머지 10%의 과정에서 다른 기능을 요구하는 경우가 흔한 까닭입니다. 각 프로젝트의 특성을 100% 반영한 ‘맞춤 솔루션’이 필요한 배경이며, 8+1 중 ‘+1’에 해당하는 특징입니다. ‘공간 빅데이터 처리·가시화 등 종합관리 원천기술’은 독립적인 특성을 갖고 있는 건설현장의 니즈를 모두 충족시킬 수 있는 솔루션이라고 확신합니다. 실제로 로봇개 ‘스팟’의 사례에서도 알 수 있듯 해당 원천기술을 기반으로 각 현장에 필요한 솔루션을 개발함으로써 업무의 효율성 및 안전성을 크게 제고됐음이 이미 확인됐습니다.
해당 기술이 현재 실질적으로 산업현장에 투입된 사례에 대해 소개해 주십시오.
실제로 데이터 플랫폼의 적극적인 활용을 보여주는 기업으로는 초정밀(Fab) 시공이 필요한 삼성물산, 건설 데이터의 자산화를 선언한 현대건설, 자산관리 분야의 1위 기업인 현대엔지니어링 등을 꼽을 수 있습니다. 또한 대규모 생산시설 플랜트 안전관리에 활용하기 위한 LG화학, 한국전력 등에서 선제적으로 로봇기반 안전 솔루션을 도입했습니다. 공간 빅데이터 종합 관리기술에 기본적으로 탑재돼있는 3D지도와 해당 솔루션을 확장·적용시킨 로봇개 스팟을 비롯해 수많은 혁신기술들은 이미 수많은 현장에 적용되고 있는 ‘현재 진행형 기술’입니다.
공간 빅데이터 원천기술의 시장진출은 어디까지 진행된 상황인가요?
앞서 설명한 대로 국내 건설시장을 기준으로 이미 충분한 진입이 이뤄진 상황입니다. 현재는 해외시장 진출을 목표로 다각적인 시도가 병행되고 있으며, 얼마 전 싱가포르에서 진행된 대형 건설현장에 로봇개 ‘스팟’과 ‘R-Eagle’의 납품 계약을 체결하는데 성공하기도 했습니다. 다행히 해당 현장의 만족도가 매우 높다는 피드백을 받았습니다. 또한, 여러 나라에서 저희 기술에 주목하고 있어 향후 전망 역시 긍정적입니다. 제가 목표하는 다음 시장은 해외 반도체 부품 생산공장(이하 FAB) 건설현장입니다. FAB는 전 세계에 약 1,100개가 설립됐으며, 이중 무려 100여 개가 미국에 있습니다. 인텔은 오하이오주에 200억 달러를 투자해서 2개의 FAB을 새로 건설할 계획을 밝혔고, 삼성전자는 2,000억 달러를 투입해 텍사스에 11개의 FAB를 세울 예정입니다. 이에 컨워스는 건설현장의 원활한 시공 및 체계적인 유지·관리를 위한 종합 솔루션인 ‘C-Eagle’의 납품계약 체결을 위해 다각적인 노력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이외에도 공간 빅데이터 원천기술의 폭넓은 활용성을 바탕으로 현재 산림 분야에 대한 진출을 완료했으며 문화재 관리를 위한 솔루션 개발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해당 기술을 개발한 건설 데이터 플랫폼 기업 ‘컨워스(Conworth)’는 어떤 기업입니까?
컨워스는 건설산업에 필요한 데이터 솔루션을 제공해 품질과 안전을 도모함으로써 생산성을 제고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혁신 스타트업입니다. 건설 데이터 특성을 분석해 도출해낸 9가지 조건을 만족시키는 엔진, 그래픽, 서버 관련 특허기술 등을 망라한 공간 빅데이터 원천 기술이 컨워스만의 차별성이라 할 수 있습니다. 현재 컨워스가 개발하고 있는 기술들은 ‘C-Eagle(건설현장의 시공 및 유지·관리를 위한 건설 타게팅의 솔루션)’, ‘R-Eagle(3D 지도 기반의 로봇 솔루션)’, ‘T-Eagle(도시 단위의 3D 디지털 트윈 솔루션)’ 등으로 건설 데이터의 체계적인 활용을 통한 품질 및 안전성 제고에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연구 분야 선정 및 기술개발에 대한 교수님의 철학은 무엇인가요?
컨워스(Conworth)는 ‘construction’과 ‘worth’를 합성해 만든 이름으로 ‘건설을 가치 있게 만든다’는 의미입니다. ‘worth’라는 단어는 제가 가장 좋아하는 단어이기도 하고, 회사의 비즈니스가 건설산업의 생산성 향상을 목표로 한다는 점에서 목적성이 일치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앞으로도 컨워스는 지속적인 혁신기술 개발을 통해 기업들이 현업에서 겪고 있는 데이터 관련된 문제를 해결하고, 다른 기업에서 제공하기 어려운 우리만의 가치를 제공하고자 합니다.
앞으로의 계획과 목표를 공유해주시기 바랍니다.
컨워스의 솔루션이 건설산업 전반의 디지털 전환과 생산성 향상을 통해서 선순환적 가치를 제공할 수 있었으면 합니다. 기업을 운영하는 입장이다 보니, 당연히 회사의 성장과 이익을 바라는 마음도 있는 건 사실입니다. 다행인 점은 현재 우리나라 정부 및 학계의 흐름이 연구진의 창업을 적극적으로 지원해주고 있다는 것입니다. 실제로 컨워스 역시 정부와 학교의 다각적인 지원으로 탄생할 수 있었습니다. 앞으로 가시적인 성과를 통해 학계와 산업계의 콜라보레이션에 대한 긍정적 영향력을 입증함으로써 대학에서 출발한 건설 분야 스타트업의 대표 사례가 되길 희망합니다.